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근혜 5촌 살인사건 (문단 편집) == 배경 == [[파일:external/blogfiles11.naver.net/2016-12-17_16%3B41%3B51.png]] [[1990년]] [[박근혜]], [[박근령]], [[박지만]] 남매는 [[육영재단]] 소유권 때문에 크게 싸웠다. 이때 육영재단은 박근혜 이사장을 등에 업은 [[최태민]] 고문이사 일가가 전횡을 저지르고 있었는데 이를 보다 못한 박지만과 박근령이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언니랑 최태민 좀 떼어내 달라"고 [[박근혜/개인처신 문제|탄원서까지 보냈을]] 정도였다. 하여튼 이 문제 때문에 다투다가 결국 박근령은 친언니인 박근혜를 밀어내고 차기 이사장에 취임하였다.[* 공식적으로는 박근혜 이사장이 스스로 용퇴를 선언하고 박근령 이사장이 취임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재단 직원들과 근화회에서 이런 석연찮은 상황을 폭로했고 결국 박근령 이사장은 취임식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육영재단은 부동산만 4조 원 가치(2016년 시가 기준)를 지니고 있는 대형 재단으로, 임대 수익사업으로 꽤 많은 돈을 벌었으나 재단 운영이 폐쇄적이라 온갖 비리 의혹으로 점철되었던 탓에 수익금에 대한 루머가 무성했다. 한데 이런 현상은 박근혜가 물러나고 박근령이 취임한 후에도 딱히 해소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던 와중 2007년부터 그동안 힘을 합쳐왔던 박근령과 박지만의 사이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바로 박근령의 남편인 [[신동욱(1968)|신동욱]] 때문이었는데 신동욱은 2007년 2월에 14살 연상의 박근령[* 박근령은 1954년생, 신동욱은 1968년생이다.]과 약혼했고 1년 8개월 후인 2008년 10월에는 결혼했다. 그런데 약혼한 시기쯤부터 박지만은 신동욱이 육영재단의 운영권을 독점할 것을 두려워했는지 박근령-신동욱 커플과 갈등을 빚게 되었다.[* 약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신동욱이 육영재단 건물 앞의 나무들을 전기톱으로 자르는 일이 발생했는데 그 나무들이 [[박정희]]와 [[육영수]]가 생전에 직접 심은 기념식수라서 이를 알게 된 박지만이 분노하면서 갈등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신동욱이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 해명한 바에 의하면 당시 육영재단의 감사로 어린이들이 많이 다니는 회관이니 가시덤불 등 애들에게 위험해 보이던 장애물들을 자른 것일 뿐 박정희 관련 나무는 건드리지도 않았으며 이는 단지 재단의 운영권을 차지하기 위한 시비를 걸기 위한 명분에 불과하다고 반박을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갈등이 깊어지자 박근령-신동욱 부부와 박지만 양 측에선 [[조직폭력배]]와 불법 용역회사 등을 동원한 폭력행사까지 서슴치 않게 되었는데 급기야 2007년 11월 28일에는 '''불량배 200여 명이 동원된 대규모 폭력 사태'''까지 터졌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8년에 박근령이 육영재단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재단을 불법 운영하고 재단 운영비를 박근령이 횡령, 착복하는 등의 범법 행위가 발각되면서[* 사실 박근령은 2001년 12월에도 성동교육지원청으로부터 이사장 해임 처분을 받은 적이 있다. 재단이 신고되지 않은 수익사업 등을 진행했기 때문. 결국 박근령은 행정소송을 걸어 이사장 해임의 부당함을 주장했고 끝내 문제 없이 돌아오기는 했다.] 이에 박지만은 박근령에 대한 공세를 더욱 밀어붙였고 [[한센병]]자를 동원한 박지만 측은 기어코 육영재단을 장악하는 데 성공해 당시 이사장이었던 누나 박근령과 누나의 남편인 신동욱, 그녀의 측근들 대부분이 육영재단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이때 한센병자들을 끌고 온 우두머리 [[임두성(1949)|임두성]]은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제18대 국회의원 목록|한나라당 비례대표 2번]]으로 금뱃지를 달았지만 2010년 10월 뇌물수수 혐의가 인정되어 결국 의원직을 잃게 되었다. 애초부터 전과 12범이라 문제가 많은 후보였는데 입후보 당시엔 이러한 사실을 숨겼다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79&aid=0001963251|당선 후 뒤늦게 드러났다.]] 참고로 이 문서의 주인공인 '''박용철'''과 그의 부하이자 훗날 컵라면을 먹다가 사망한 짱구파 두목 '''황선웅'''도 이 폭력 사건의 주요 관련 인물 중 한명이었다. 여튼 이때부터 박근령은 육영재단 이사장에서 물러나고 육영재단은 임시이사체제로 운영되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1849686|당시 기사]], [[https://www.youtube.com/watch?v=q1Ibo9wZxhc|당시 영상]] 육영재단은 2009년부터 임시이사 체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현직 조수연 이사장[* 본업이 광고회사 대표이다.]도 현상유지 정도만 할 뿐 특별히 재단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